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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닿은 곳. 무등산 규봉암,
2010. 01.30(토) 15:54확대축소


아득한 절벽 아래로 펼쳐진 아찔한 풍광을 자랑하는 규봉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자그마한 암자 하나를 품어왔다.

규봉암(圭峰庵)은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
전남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897번지, 무등산 동쪽 기슭 해발 약 95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아직 눈이 남아있는 등산로,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이 가까워지고 저멀리 정상이 보인다. 저아래 오늘에 목적지 규봉암이 자리하고 있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문헌에 나타나지 않으나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창건에
이어 798년(元聖王14) 당나라에서 귀국한 순응대사(順應大師,생몰미상)가 중창했다고알려져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규봉을 찾은 의상대사가 바위틈에서 흐르는 샘물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음을 기이하게 여겨 이 절을 지었다는 것.

이 샘물은 지금도 규봉암 요사채 뒤에 흐르고 있어 창건설화에 신빙성을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규봉암(圭峰庵)'의 명칭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중 하나가 당나라 때 큰 활약을펼쳤던 종밀(圭峰宗密, 780~841)선사가 거처했던 곳의 지명이 바로 규뵹(圭峰)이였다는 것이다.규봉암을 최초에 창건했던 의상대사가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음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가설인 것으로 관련성이 비교적 막연한 편이다.
반가운 표지석에 부처님께서 안내를 해주신다.

보다 유력한 것은 규봉이라는 명칭이 그 주상절리대의 다각형 기둥 모습이 .규(圭)'와 닮았다는 데서 찾고 있다. 규(圭)라는 것은 고대 중국에서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주는 신표로 대략 9치 정도의 길이의 옥으로된 막대를 말한다. '규(圭)'를 두고 "상서로운 옥으로서 위는 하늘을 본떠 둥글게 다듬고, 아래는 땅을 본떠 네모지게 만들어진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규봉암 주위의 바위들이 중국의 천자가 제후들에게 하사한 규와 같다는 뜻으로 규봉암이라 이름했다는 것이다.
규봉암에 대한 현전하는 기록으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의 <서석산 규봉사에 쓰다>라는 시(詩)가 전해지고 있고,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규봉사’라고 적고 있어 고려 후기에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내 표지석 을 따라 올라가니 왠 성벽이 앞을 가로 막는다. 놀랍다. 대대적인 불사가 진행 중이였다.

규봉암을 가는길은 증심사에서 중머리재, 장불재를 거처서 가는길이 있고, 원효사에서 장불재를 거처 가는 길이 있다.
기자는 원효사 지구 무등산장 에서 꼬막재를 거쳐 화순 이서면을 죄측으로 오르는 길 을 택했다.

기자와 규봉암(圭峰庵)과 의 인연은 각별하다. 강산이 세네번은 변했을 69년 가을 처음 으로 이서면 영평리에서 산위의 규봉만을 바라보며 길도 없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한나절이 넘도록 꼬박 걸어서 올랐었다. 규봉암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에 발아래서 떠 오르는 일출은 장관이였다.

잊을수가 없다.

주지스님께서 석간수 를 받아 가마솥에 밥을지어 도시락을 싸주시며 그 당시 장불재에는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까닭에 가는길이 위험 할 수 있으니 안전한 길을 일러주시며 만약에 군인들의 재재를 받거든 스님 이야기를 하라시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웅을 해 주셨던 스님, 지금은 열반에 드셨는지 존함 도 기억하지 못한다.
고개를 뒤로 젖혀야 만이 카메라에 담을수 있었다.

그 후 몇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사찰탐방 취재 차 오르는 길은 의미가 새롭다.
오랜만의 산행에 규봉암 가는길은 군대군대 눈이 남아있는 구간도 있었고 질퍽거리는 등산로를 쉴새없이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등산 규봉암! 참으로 오랜만에 일주문앞에 합장을 한다.
.
법당인 관음전에 공양물과 108참배를 올리고 잠시 명상에 잠겼다.
절벽과 거의 맞닿은 관음전 북쪽 처마 단청이 꽃처럼 아름답고 장엄하다.
그 옛날 의상대사가 바위틈에서 쉴 새 없이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이 곳에 절터를 잡았다.는 샘이 있던자리, 이렇게 높은 곳에 암자를 세운 것도 충분한 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기자가 처음 왔을당시에는 아득한 바위절벽에서 홈대 를 타고 떨어지는 석간수를 받아 식수로 사용했었다. 참으로 멋있고 운치있던 그 자리에 용왕각이 지어져 있다. 그동안에 세월이 얼마인가!
규봉의 절경이 시야에 가득하다.
해발이 높아서 일까? 규봉의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바람도 없고 햇살은 따사롭고...
아니? 어떻게 해발 1000고지가 다 되는 높은 절벽아래 왠 중장비인가? 맙소사!!! 상좌스님 께서 하시는 말씀 중장비를 삼등 분해를 해서 헬리콥터로 이동을 했다 한다. 많은 사람에 궁금증을 유발했기에 장비가 어떻게 올라오게 됐는지 설명이 약 250번째는 될거라는 웃음석인 대답이였다. 대단 하다고 감탄을 해야할지,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것인지... 보다 넓고 편안한 도량에서 부처님 법을 펼치기를 소망한다.
관음전을 중심으로 삼성각, 용왕각, 종각, 공양간, 요사채. 해우소, 등 갖추고 도량 마당을 고르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관음전,
관음전 남쪽 처마.
측면 멀리서 바라본 관음전,
더 멀리서...
관음전 좌측, 삼성각.
아래는 일주문, 위층은 종각,

김덕령 장군이 활쏘기 등 무술을 연마했다 는 4,5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문바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규봉을 지키고 있다. 소박했던 옛모습이 아름다운 앨범처럼 기억되어있는데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모습에 아쉬움이라고 해야할지..... 문바위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규봉을 오르면서 많은 돌과 바위들을 만났다. 돌 덩어리 하나하나가 아무렇게나 뒹구는것 같지만 보물이고 부처님의 존상이라고 생각됐다. 그런데 화려한 건물을 위해 바위와 돌과 나무들이 쓰러지고 흩어지고 꺽여지는 것이 아쉬웠다.
수천년의 세월이 흐른 후 에도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기를 바라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내려 딛는다. 규봉암에서 서쪽으로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마애 석불암을 친견하기 위해서...


기자가 방문했을때 규봉암 주지 정인스님은 출타 중이었고 상좌이신 무등스님이 보이차를 내놓았다.



지안 송선숙 기자 sssjoh@hanmail.net        지안 송선숙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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