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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2016. 06.01(수) 09:30확대축소

손택수시인 (창비 사진)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둔 다섯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 호랑이 발자국, 2007, 창비

* 저자 소개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경남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제2회 부산 작가상 수상.

* 저자의 창비 책
목련 전차
손택수 / 2006-06-05 / 6,000원
호랑이 발자국
손택수(孫宅洙) 지음 / 2003-01-17 / 6,000원

* 저자의 계간지 글
[계간 창작과비평 111호] 단지 외
[계간 창작과비평 123호] 어부림 외
[계간 창작과비평 127호] 대지의 향기, 꽃속에서 터진 말 조태일론

다음은 인터넷에서 찾아낸 손택수 시인의 자전적 나레이션이다.

<어릴적 고향에 대한 기억>
손택수 - 오늘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속전철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오면서 느낀 게 바깥 풍경을 보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서 굉장히 줄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체로 눈을 감고 있거나 신문을 보고 있거나 혹은 휴대폰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차안에서 창밖을 보는데 풍경들이 예전처럼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여물을 먹는 소처럼 느긋하게 왔던 것 같은데 오늘은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음미를 하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서글픈 생각들이 들었고 동시에 여러가지 생각들을 갖게 했습니다. 기차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주던 아이들, 일을 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자기와는 관계가 없는 기차를 향해서 손을 흔들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서 열차 안에서 마치 두고 온 자식들, 혹은 두고 온 사람을 보듯이 같이 답례처럼 손을 흔들던 승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속전철 첫 개통한 날 신문을 봤는데 어느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셨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저에게는 마치 어떤 징조처럼 다가오면서 제가 고향을 떠나서 처음 도시에 왔을 때 느꼈던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다섯 살 때 전남 담양에서 부산으로 왔습니다. 영산강이 출발하는 곳에 용소라는 연못이 있는데 바로 그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고향에 살았던 기억이 5년밖에 안되지만 거의 제 인생 전부를 지배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강물 속에서 헤엄을 칠 때 가랑이 사이로 섬뜩하게 지나가는 물고기들, 뱀장어들의 그 미끈미끈한 감각들 있지 않습니까, 그게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또는 집안 어른들이 들일을 나가실 때 저를 감나무 밑에 새끼줄로 묶어놓고 나가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감꽃 주워 먹고 흙도 주워 먹곤 했습니다. 흙을 먹어본 기억이 저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무하고 제가 탯줄처럼 이어져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나무를 빙글빙글 돌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리곤 했던 기억들이 대지와의 근원적인 일체감으로 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한글을 배울 때 할아버지한테 익혔는데요. 들일하러 지게 지고 따라가다가, 할아버지께서 징용 가기 전에 마을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면서 익혔다는 우리나라 자모음을 가르쳐주시곤 했습니다. 지게 작대기로 땅에 '기역', 쓰고 읽으라고 하시면 소리 내어 읽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기역, 할 때 그냥 활자만 쓴 게 아니라 따라 읽으라고 했거든요. 침을 튀기면서 따라 읽는 거죠. 그랬을 때의 활자는 거의 언문일체죠. 그렇게 고향에서의 추억들은 말과 글의 일치로서 저에게 다가왔고 자연과 내 자신과의 일체감으로 작용했던 것이죠. 처음 부산에 왔을 때 이층짜리 건물을 보는데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우람한 것들이 내려다보는데 마치 거인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도시에서 자라면서 일치했던 말과 글마저 저에게는 분리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옛날에는 책을 읽더라도 소리 내면서 읽고 자연과 호흡하면서 독서를 했는데 도시에서의 책읽기는 굉장히 폐쇄적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왔을 때의 정서는 저에게 균열작용을 일으켰다고나 할까요. 말의 경우는 심지어 말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모국어로서 작용하는 남도 사투리와 부산 사투리가 뒤섞여서 혼란스럽게 사춘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갈등이 문명과 자연과의 틈을 보게 하였고 내가 잃어버린 고향과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똑똑히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좋은 시인들은 자기 신화를 갖고 산다고 합니다. 제게는 고향에서의 추억이 도시에서 갈등하면서 내 신화로서 저와 함께 성장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향에서의 추억에 대해 더 말씀드린다면 땅을 딛고 선 자의 구체적 실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지가 저에게는 확장된 자아로서 다가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도시에서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는데 이 균열, 이 갈등을 어떻게 할까 계속 고민을 하면서 제가 시를 쓰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벌어진 틈을 계속해서 시간을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상상력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소용돌이치는 존재이다>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은 소용돌이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발바닥에서 가마 꼭지까지 한번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아마도 소용돌이 무늬가 회오리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용돌이 무늬는 일상에 얽매인 삶 속에서 점점 더 굳어갑니다. 그 굳어져가는 각질을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최초의 사물들, 혹은 최초의 자연과 만났던 그 떨림을 향해 역류해 들어가는 것이 시의 한 면모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료출처]
창비 출판사
http://www.changbi.com/author/content.asp?pAID=0610


지안 sssj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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