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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2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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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 이진명
2016. 06.14(화) 10:18확대축소

전화가 왔으면
전화가 왔으면
전화가 왔으면

명절인데 엄마는 전화도 못하나
거긴 전화도 없나
전화선 안 깔린 데가 요새 어디 있다고
무선전화 세상 된 지가 벌써 언젠데

유선이든 무선이든 전화 하나 성사 못 시키는
느려터진 보름달
둥글너부데데한 지지리 바보
얼굴 피부 하나만 허여멀건 반질해가지고
지 굴러가는 데 알기나 알까
잠실운동장의 몇백만 배 될 그런 운동장 암만 굴러도
아직 모르냐, 너, 거기 죽은 세상이란 걸

여기도 죽은 세상
거기도 죽은 세상
똑같이 죽은 세상
죽은 세상끼리 왜 통하지 않느냐

엄마는 그깟 전화 한번을 어떤 세월에 쓰려고 아끼나
할머니도 마찬가지
죽어 새 눈 떴는데
아직도 눈 어두워 숫자 버튼 하나 제대로 못 누르나

여기도 죽은 세상
거기도 죽은 세상
국번 없고 고유번호 없고
전화기 돌릴 손모가지가 없어
전화 못하긴 나도 마찬가지

오, 그렇지만 나는
빈다
빈다
빈다
아무 잘못 없는
바보 보름달에게 말도 안 되는 시비하며
죽어도 마음은 있어서 빈다

전화를
전화를
전화를


● 출처 :『세워진 사람』, 창비 2008

● 詩. 낭송 : 이진명-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0년『작가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단 한 사람』『세워진 사람』 등이 있음.


일가친척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면 오히려 가족의 빈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지요. 돌아가신 엄마와 할머니를 향해, 전화 한 통 성사 못 시키는 “바보 보름달”을 향해, 회선이 닿을 수 없는 저편의 세상을 향해, 달무리처럼 아픈 독백이 울려 퍼집니다. 그래서 오늘따라 달이 더 크고 둥글게 보이는 걸까요?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동구역 같은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시인은 간절한 기원을 시비와 투덜거림으로 바꾸어 말하며, 이미 죽은 세상과 통화하고 있습니다. 시가 바로 그 공동구역입니다.

문학집배원 나희덕.


지안 sssj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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