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2(일) 11:58
2020년 7월 12일(일)
전체기사 정치/자치 경제/사회 교육/문화 광주전남소식 시사칼럼 건강칼럼
맑은세상 포토
차한잔의 여유
시(詩)마당
::방문자 카운터::
전체 방문자18,336,607명
최대 방문자34,436명
어제 방문자21,404명
오늘 방문자5,360명

아도 스님의 유마사 이야기

승보사찰 송광사 말사로 보안 낭자의 전설로 유명
2019. 01.17(목) 22:41확대축소

유마사는 전남 화순군 남면 유마리 모후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승보종찰 송광사의 말사입니다.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 올라가면 비탈길에 수놓은 듯 피어있는 야생화는 태고의 정취를 자아내게 하고 웅장한 산세와 색다른 정취에 많은 사연들을 간직한 모습으로 다가 옵니다.

절에 다다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해련부도입니다. 고려전기의 전형적인 팔각부도로 보물(116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팔작 지대석 위에 안치한 전형적인 팔작 원당형 부도로 팔작과 기단부 위에 팔작의 탑신과 옥개석을 차례로 놓았으며, 여덟 귀퉁이에 귀꽃 문이 있는 복련석으로 이루어졌고, 중대 각면에는 큼직한 안상이 1구씩 조각되어 있으며, 탑신 전 후면에 문비 형이 모각되어 있고 특히 앞면에는 문고리가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윗부분에 해련지탑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어 해련스님의 탑임을 알 수 있는데 해련이 누구인지는 명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고 풍문에는 보안의 부도라는 설도 있습니다,
해련 부도탑을 지나면 세부조각까지도 종 형태를 표현한 보기 드문 석종형 부도가 있는데 가안선자 와 경헌선사의 부도라고 전합니다.

유마사의 창건은 <동복읍지>, <유마사 향각변건 상량문>등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 무왕 28년(627년)에 중국 당나라의 고관이었던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이 창건하였으며 유마사 경내에는 보안보살이 체로 달을 건저 올려 비구승을 공부시켰다는 제월천과 보안보살이 치마폭에 싸 옮게 놓았다는 보안교가 1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현존하고 있습니다.

17세기 무렵 경헌스님이 절을 중건했고 그로부터 50년 뒤에 가안 선사가 나한상을 조성 했는데 가안 선사가 만든 나한상은 특히 뛰어나 세상에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고 전합니다.
이어서 고종26년에 전라도 관찰사인 김규홍이 절을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향화가 계속 이어진 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유마운은 중국 요동지방의 태수였습니다.
오십이 넘어 얻은 딸 보안은 천재 소녀로 이름이 났는데 유마운은 보안을 낳고 죽은 부인을 대신해 정성을 다하여 딸을 키웁니다.
보안이 일곱 살 되던 어느 날, 유마운은 죽은 친구 진성주의 탈상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딸 보안이 말하기를 돌아오시는 길에 사당 뒤 담장 일곱 번째 기왓장 밑에 죽은 진성주의 업신을 만나고 오십시요”라고 합니다.
유마운은 진성주는 평소 가난한 백성들을 잘 보살펴준 어진 영주였기에 적어도 도솔왕생을 했을 것이라 여기며 보안의 말대로 담장의 기왓장을 들어 올렸습니다.

기왓장을 들어 올린 유마운은 혼비백산하고 말았습니다.
기왓장 밑에는 일곱 또아리를 튼 커다란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유마운은 집으로 돌아와 보안에게 “이 애비에게 그런 구렁이를 보게 하느냐” 하며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보안은 아버지는 더 하실텐데 무얼 그리 놀라십니까?
진성주는 일곱 고을 성주를 하였고, 마음씨 곱고, 뜻이 어질어,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던 이름난 군주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아버지는 열 세군데 태수 노릇을 하면서도, 임금에게 잘 보이기는 하였지만, 그동안 사람을 얼마나 죽였으며, 백성의 원성을 얼마나 많이 샀습니까?
진성주는 일곱 또아리의 황구렁이가 되었지만, 이제 아버지는 열 세 또아리를 하고도 먹구렁이가 될 것인데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하십니까? 라며 말하는 보안의 얼굴은 진지했습니다.
유마운은 잠시 마음을 안정한 뒤, 딸 보안을 방으로 불러들여 묘책을 물었습니다.
다음날, 보안은 일가친척과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성대히 잔치를 베풀고 그 자리에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을 골고루 나눠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보안은 아버지를 모시고 머나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밝은 달이 떠있는 어느날 밤, 유마운은 그의 딸과 함께 은빛 찬란한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조각배를 타고 강을 건너오는데, 배가 강 중심에 이르자 갑자기 폭풍이 일어 배가 요동을 치더니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보안은 물 한방울 발에 젖지 않고 물 위에 동동 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유마운은 생명의 위급함을 느끼고 보안을 부르며 구원요청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직도 미련이 있어 버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십시오.”

유마운은 달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니 상투 끝에 몰래 감추어 놓았던 보석하나가 달빛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비상용으로 몰래 간직한 값진 보물이었습니다.
유마운은 그것을 머리에서 떼어 강 저편으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물 속 깊이 가라앉던 배가 스르르 떠올라, 유마운은 마음을 놓고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유마운과 보안은 몇날, 며칠을 걸고 걸어서 두 발이 다 부르터지고 신고 온 가죽신이 터졌을 때 당도한 곳이 전남 화순군에 있는 모후산 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보안의 나이 16세 되던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무진주 즉 광주 원님이 순방을 나왔다가 소문을 듣고 모후산을 방문하였습니다.
유마운은 손과 발은 뭉클어졌고 검게 타버린 낯빛은 시골 노인의 풍상을 연상케 했지만 밝고 깊은 안광이 누구도 그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범상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마운의 인품에 반한 원님은 영을 내려 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절을 지어주고 절 소유의 산과 절 답을 마련해 줍니다.
사세의 확장에 따라 젊은 스님 한 사람을 법당부전으로 봉하고, 많은 대중과 함께 수행정진 하며, 불국정토의 염원을 실현해 갔습니다. 그런데 부전스님은 공부에는 여념이 없고 보안의 뒷 꽁무니만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보안은 몇 차례 글을 써서 그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고 하였으나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유마운이 돌연히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절을 찾아왔던 이들도 모두 떠나버리고 깊은 산, 넓은 도량에는 보안과 젊은 스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보안의 꽁무니만 따라 다니는 스님을 보고 참다못해, 스님께서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부부의 연을 맺고 평생 해로를 하겠사오니, 떡가루 치는, 고운 채 하나만 가지고, 저녁 열두시에 하천으로 나와 주십시오.

밤이 되어 만나자 보안은 스님에게 제의합니다.
“스님, 저 물 속에 둥근 달이 보이지요? 저 달을 이 채로 건져내는 것입니다. 스님과 제가 달을 건져도 좋고, 둘이 다 건지지 못하여도 또한 좋습니다.
그러나 스님께서 건지지 못하고 제가 건지게 된다면 우리들의 약속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스님 그렇게 약속을 하시겠습니까?“

스님이 생각해 보니 보안이 아무리 하늘에 별을 따는 재주를 가졌다 할지라도 물속의 달을 어찌 건져 낼 수 있으랴는 생각에 약속을 하고, 달을 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채 바퀴를 물속 깊이 집어넣고 달을 건져도 달은 올라오지 않아 결국 포기를 합니다.
차례가 된 보안은 채를 들고 물속 깊이 들어다 보이는 둥근달을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두 손을 들어 채 바퀴를 물속 깊이 넣었다가 올렸습니다. 그런데 둥근달이 채 바퀴 안에 담겨져 있는 것 입니다, 참으로 진기한 광경이었습니다.
부처님 볼 면목도 없고, 보안을 보기에도 민망하였습니다.
스님은 세상만사에 흥미가 없고 세월이 가는 중에 회복할 수 없는 상사병에 걸리게 됩니다.
보안은 어느 날 그를 법당 안으로 불러 들립니다.

“스님을 보니 하도 딱해서 스님과 백년가약을 맺기로 하였습니다” 하면서 법당에 걸려있는 탱화를 내려서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옷을 벗었습니다. 스님은 망설였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좋기로서니 탱화를 깔고 누울 수야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는 순간 “너는 만들어 놓는 그림에 불과한 부처는 무섭고 진짜 살아있는 부처는 무섭지 않느냐?”
보안은 백의관세음보살로 화하여 연꽃을 타고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보안은 전생의 도반으로 누구든지 먼저 성불하는 사람이 도반을 이끌어 주기로 약속한 사이였던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유마운의 호를 따서 유마사라 부르며, 보안이 있던 방을 보안당이라 했습니다. 보안이 치마로 옮겨 놓았던 다리 보안교와 달을 건져 올렸던 우물은 제월천이라 하고 유마사 아랫마을을 유마리라고 불립니다.
오늘도 좋은날 되시고 날마다 날마다 부처님 되세요.


지안 송선숙 기자 help@mgsesang        지안 송선숙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사말 | 회사개요 | 회원약관 | 개인보호정책 | 청소년보호정책 | 공지사항 | 제휴문의 | 광고문의 | 기사제보

제호 : 바르고 맑은 세상 등록번호 : 전남아00091 등록년월일 : 2009년 2월 17일 간별 : 매일 | 회장:장순택 발행인·편집인 : 정재신

발행소 : 전남 화순군 화순읍 신강로 192-16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재신 news@mgsesang.com 제보 및 문의 : 061)375-2525(代)
맑은세상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